소전300권勸
읽는 사람들에게 300권의 고전을 권합니다. 고전 문학은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삶 속에서 호흡하며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소전문화재단은 고전 문학을 함께 읽는 더 넓은 장을 마련해, 누구나 문학을 이야기하고 사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문가들의 자문과 감수를 바탕으로 구성된 300권은 오랜 시간 곁에 두고 읽을 고전이자 초보자도 스스로 읽어 나갈 수 있는 양서의 목록입니다. 이 책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기를 희망합니다.😀
1. 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외부의 도움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저자의 대표작이면서 입문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2. 다양한 저자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저자 당 하나의 작품을 선정했으며, 중·단편의 경우 저자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2‐3편 선정했습니다. 3.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을 기준으로 선정했으며, 한국어 판본이 존재하는 작품 중 절판, 품절 도서를 제외하고 선정했습니다. 4. 분류된 언어로 쓰였으나 이주, 망명 등의 맥락, 작가의 지역적 정체성이나 특정 지역의 사회문제 등을 강조하는 경우 기타 언어권으로 분류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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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읽는사람 Vol.6
[이달의 소설] 10월 이달의 소설과 서평 엿보기
[이달의 고전] 10월 이달의 고전과 서평 엿보기
[이 계절의 소설]
- 함께 읽기의 즐거움 - 금정연 서평가
- 김갑용 작가, 『냉담』 - 소전문화재단 장학생 서평
[인터뷰] 『카프카의 프라하』 최유안 작가
[월간 소전 소식] 11월 주목할만한 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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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고전이 될, 시대를 넘어서는 장편소설을 찾아 나섭니다. '이달의 소설' 10월 활동을 위한 신간 장편소설은 총 16권이 선정되었는데요. 선발대들에게 가장 높은 고전 지수 평점을 받은 작품 Top3는 어떤 작품이었을까요? 10월 큐레이션 장편소설과 고전 지수 평점이 높은 Top3 작품, 그리고 그 작품들의 서평 일부를 소개합니다. 더 많은 작품들의 솔직한 서평은 읽는사람 커뮤니티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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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지수 평점이 높은 Top3 이달의 소설 -
🥇Top 1. 고전 지수 평점 3.8
- 『참 좋았더라』, 김탁환, 남해의봄날
🥈Top 2. 고전 지수 평점 3.7
-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다산책방
- 『67번째 천산갑』, 천쓰홍, 민음사
🥉Top 3. 고전 지수 평점 3.6
- 『빛과 멜로디』, 조해진, 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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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지수 평점 4.0점
"김탁환의 소설은 언제나 군더더기가 없고 담백하다. 그러므로 독자의 감동을 끌어내는 힘이 더 강하다. 자신감에 찬 정공법. 이중섭을 생생히 되살려낸 고마운 작품." |
💬 고전 지수 평점 4.0점
" '예술가로서 나는 어디까지일까. 화양연화는 이미 지나갔을까. 아직 오지 않았을까. 지금 지나는 중일까.' 그의 삶과 작품이 작가의 특유 덤덤한 문체로 이어지기에 더욱 먹먹하고 따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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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ㅣ다산책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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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지수 평점 4.4점
"생각할 거리가 많아 읽으면서 수시로 멈추다 보니 더딘 독서가 되었다. 그럼에도 쉽지 않은 독서였다. 하지만 반복해 읽고 나면 뿌듯해지는 책. 뇌가 한바탕 운동을 한 느낌이다." |
💬 고전 지수 평점 4.2점
"내 피부 너머의 존재를 겨우 일부만 이해할 수 있는 필연적 한계에도, 책 읽는 동안만큼은 나를 비껴가지 않은 ‘우연’이 가져온 엄격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고전이 될 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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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지수 평점 4.2점
"악의가 가득한 이 시대, 선의로 가득한 이 책을." |
💬 고전 지수 평점 4.0점
"딸이란, 성 소수자란 천산갑과 닮은 존재들이다. 사소한 일에도 놀라 단번에 죽어 버리는 천산갑. 반격이라곤 모르는, 모두에게서 상처받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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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지수 평점 5.0점
"카메라라는 창을 통해 타인의 인생을 기록한다는 것. 그리고 프레임 속에 담긴 그 인물들을 프레임 밖에서 생각해 보는 것. 생각해 보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
💬 고전 지수 평점 4.0점
"지나간 모든 인연에 내가 모르는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제라도, 잠시라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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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통해 삶을 더 풍요롭게 가꿔 나가고자 하는 독자들과 함께 고전 읽기의 즐거움과 의미를 찾아 나섭니다. 고독대들과 함께 읽은 10월 작품에 대한 흥미로운 콘텐츠와 서평을 읽어보고 내가 읽고 싶은 고전은 어떤 작품일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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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공통 키워드 자유를 찾는 자
작품 비교 키워드 서로 다른 자유의 추구 > 관습 or 윤리 VS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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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배경인 미국의 1860~70년대는 남북전쟁의 여파로 노예 제도에 대한 팽팽한 갈등이 존재했으며, 다방면에서 '자유'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있었다. 같은 시기 『안나 까레니나』의 러시아는 산업 혁명과 근대화의 시작으로 사회적, 경제적 계급의 갈등이 두드러지던 시기였다. 그 속에서 안나는 관습적으로 남은 상류 사회의 윤리에서 벗어나 사랑의 자유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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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학 평론가는 이 작품을 두고 '한 귀부인이 불륜을 저지르다 자살하는 이야기'라고 간단히 이야기하고, 어떤 소설가는 '정기적으로 꺼내 읽으며 끊임없이 영감받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한다. 독자마다 다른 관점을 가지며 다양한 이야기들이 재생산되는 것이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이자 매력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소설의 정점을 찍은 완벽한 작품'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을 가지지 않는다.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삶과 사랑과 죽음의 모든 유형을 한곳에 담은 이 작품은, 특히 '결혼'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어, 기혼자들에게는 유달리 더 특별히 읽힌다.
고위 관리의 부인이자 자상한 어머니, 생기 넘치는 여인 '안나'는 오빠를 방문하러 모스크바역에 도착한다. 이때 젊은 백작 브론스키와 조우하고, 둘의 눈빛이 마주친 순간 안나는 자신의 평온한 삶에 찾아온 위험한 사랑을 감지한다. 강렬하게 구애하는 브론스키를 떨쳐내지 못하는 안나의 고민으로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한편 안나의 사돈 키티 역시 유능한 쾌남 브론스키와 결혼하고 싶어 하고, 그런 키티 뒤에는 그림자처럼 자리를 지키는 묵직하고 성실한 시골 귀족 레빈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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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이지 한 페이지 빨리 넘기고 싶으면서도 한 번 더 꼭꼭 씹어 읽게 되는 탁월한 심리묘사와 흥미진진한 전개. 가히 이 시대의 최고 로맨스 소설이다." |
"인물들의 불행한 가정사들로 점철된 이야기는 가히 막장 드라마급이지만, 그 속에 담긴 삶에 대한 통찰과 은유로 위대한 고전이 된 톨스토이 문학의 집대성이자 완벽한 예술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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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순수하지만 추악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사랑이 순수함과 배려와 어울린다면 아름답지만, 집착과 의심에 어울리는 순간 무엇보다 무서운 감정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
"사랑은 사람을 완성하는 감정임과 동시에 사람을 처참하게 망가지게 만들 수도 있는 감정임을 느꼈다. 치밀한 심리묘사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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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야기를 읽을 때 찾고자 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마크 트웨인은 이 정직하고 진부한 질문을 깨트리며 소설의 시작을 연다. 동기를 찾으려고 하는 자는 기소할 것이며,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추방,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총살하겠다고 한다. 이 세 가지를 버리고 나면 우리는 이야기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이 쓴 다른 소설 『톰 소여의 모험』의 연장이다. 주인공 톰과 함께 강도들이 숨겨 뒀던 금화를 찾아 부자가 된 허클베리 핀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마치 해피엔딩으로 보였던 결말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허클베리 핀이 쉽게 행복을 누리도록 두지 않는다. 재산을 노리고 다시 찾아온 아버지의 폭력은 고난과 기나긴 모험의 시작점이 된다. 습격을 받아 자신이 죽은 것처럼 꾸미고 도망친 허클베리 핀은 도피 중이던 흑인 노예 짐과 마주쳐 모험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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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모험을 통해 헉이 보여주는 인류애는 단순하지만 명료하다. 풍자로 시작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으로 귀결되는 소설이다." |
"헉이 모험 속 겪는 고뇌는 우리의 내적 갈등과 닿아있다. 그의 성장을 지켜보며 삶이라는 여정 속 두려움을 마주해도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유를 찾아가는 삶의 의미를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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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과 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들의 모험을 응원하는 동시에 새로운 모험을 상상하게 된다." |
"고난과 시련에도 꿋꿋이 쌓아 올린 우정으로, 차별과 불의의 세계를 넘어 진정한 벗이 되는 소년들의 이야기. 개인의 도덕적 자각이 비틀어진 사회를 바로잡는 시작이라는 걸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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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이 계절의 소설, 가을 시즌에 대한 금정연 서평가의 마무리 글과 김갑용 작가의 『냉담』 장편소설에 대한 소전문화재단 장학생들의 서평 일부를 소개합니다. 글 전문은 읽는사람 커뮤니티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소전문화재단은 미래를 이끌 젊은 세대에게 문화적 소양 함양의 기회를 제공하고, 역량 있는 인문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부 과정의 인문학 전공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장학 지원 사업을 진행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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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기의 즐거움 -
글ㅣ금정연 서평가
책은 혼자 읽는 거라고 생각하던 시간이 있습니다. 실은 꽤나 길었죠.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쓰고 말하는 일을 하며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게 지금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그때 제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각이었습니다. 누구도 저를 대신해서 책을 읽어주거나 글을 써주지는 않으니까요. 무엇보다, 한 권의 책이 제게 주는 감동(이렇게 말하면 조금 오글거리지만—이걸 오글거린다고 생각하는 제가 이상한 것 같기도 하지만—다른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 하겠네요)만으로 충분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서두를 뗐다면 이어질 이야기는 뻔하겠죠?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나중에는 당연한 것 같기도 했어요. 적지 않은 책을 읽어왔으니, 각각의 책이 주는 감흥들에 조금쯤 무뎌지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요. 한계효용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책에 무뎌지고, 관계에 무뎌지고, 삶에 무뎌지고, 그렇게 나이를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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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사각형 벗은 낯 -
글ㅣ소전문화재단 장학생 홍인표
『냉담』이 내일의 고전이라는 시리즈의 문을 열었다는 사실은 절묘하게 느껴집니다. 내일의 고전. 시대의 검증을 미리 가로질러 고전의 성좌를 선취하고자 하는 이 야심 찬 명명은 그 시도 자체로 몇몇 질문들을 견인합니다. 과연 문학에는 미래가 존재할까요? 고전이 더 이상 생산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그 미래와 고전은 어떤 모습일까요? 공교롭게도, 그 질문들은 『냉담』이라는 소설이 이미 그 소설 안에서 던지고 있는 물음들이기도 합니다.
[기시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남자는 전염병 시기의 도시를 배회합니다. 그는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이며, 마스크를 쓴 수수께끼의 “그녀”를 만납니다. 실제와 환상이 불분명하게 교섭된 이 전염병 시기의 세상을 가로지르며, 주인공은 “그녀”와 헤어지고 또 재회합니다.
이 소설은 ‘어디선가 본 듯한’ 소설입니다. 그것은 소설 속에 이미 우리에게 낯익은 다양한 고전들의 포즈가 변용되어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도시를 배회하는 남성 화자와 그가 우연히 조우하는 미지의 여성이라는 도식은 김승옥의 산문시대부터 수없이 답습된 근대적 소설의 전형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염병이 팽배한 배경과 실존의 부조리는 카뮈를(부조리 3부작·『페스트』), ‘도끼’의 은유와 끝없이 지연됨으로써 유지되는 체계는 카프카를(『성』·『심판』), 힘껏 성장盛裝한 고양이와 신비로운 교수는 불가코프를(『거장과 마르가리타』), 일터의 층계참에서 기거하는 고용인은 멜빌(「필경사 바틀비」)을 떠올리게 하지요.
기시감. 숱한 고전이 코드화된 이 소설에서 우리가 읽어내는 것은 파편적인 기시감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 본문이 제시하는 맨 처음의 소제목 역시 기시감임은 우연이 아닙니다. “나는 자주 기시감에 빠졌다. […] 어느 때든 간에 기시감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을 이미 이전에 겪었다고 여기는 것이다.”(9면)[1] 즉 소설에서 발생하는 기시감은 이미 작가에 의해 메타적으로 인지되는 감각이며, 소설은 단순히 고전들에 관한 향수어린 오마주를 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기시감 자체를 문제적으로 탐구하고 있습니다. [1] 김갑용, 『냉담』, 소전서가, 2024. 이하 소괄호 안 쪽수는 모두 해당 도서. 강조는 인용자.
기시감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창출될 수 없는 시대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감각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반복되는 일과가 가득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다를 것이 없어서 실질적으로 오늘이라는 자리가 희미해질 지경입니다. 주인공이 “우리에게는 지금과 당장이 없었다. 그 대신 일이 있었다.”(37면)라고 짚어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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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부록 ‘여동생’으로 -
김갑용, 『냉담』 중 아버지 몸속 식물 키우기에 대하여
글ㅣ소전문화재단 장학생 이한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151) “사람들은 말한다. 괜찮으니 숨김없이 고백하라고.”(38)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는 그 일에 대한 고백을 요구한 적 없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여느 때와 똑같이 수줍은 듯 말 없는”(153) ‘그’의 ‘여동생’이다. 나는 수줍은 적 없고, 그저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대체로 말 없는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일을 고백하며 말을 늘어놓고 싶다. 이 필요가 “낱낱이 고백함으로써 용서받거나 스스로가 떳떳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38) 나의 솔직함으로 “타인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38) 확실한 것은 나의 오빠인 ‘그’가 기나길게 말할 동안 나 또한 무언가 말하고 싶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찾아온 오엽송에 대하여, 아버지 “속에서 풀떼기를 키워가며” 아버지를 살리려 했던 일에 대하여.(140)
어릴 적, “야간 운행을 하던 아버지가 안방에서 자는 낮 동안 나머지 네 식구가 숨죽여 생활해야 했던 좁은 방에 홀로 남겨지면 어김없이 시도하던 게 있었다.”(9) “오후의 창에서 스며드는 빛의 조도와 낡은 장롱이 드리우던 그림자의 기울기, 철 지난 이불의 구겨진 모양새, 거울을 마주 보고 선 나의 어색하고 굳은 표정.” “그 순간 주워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분리하기. (9-10) 가장 먼 곳을 상상하기, 지금 이 음울한 현실보다는 더 나은 것이 있다고 상상해 보기.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모르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 줄 이질적인 존재가 필요했다. 그리고 어느 날, 어머니가 잿빛 집에 사시사철 파릇한 존재를 데려오셨다. 동네 오일장에 갔다가 얼떨결에, 기르기에 편리하다며 떠넘겨 받듯 데려오신 “어린 오엽송”(129) 분재였다.
“「저 나무는 무슨 나무야?」「소나무」「무슨 소나무?」”(141) 조금은 놀란 눈으로 오엽송을 이리저리 관찰하며 물었을 때 어머니는 “섬잣나무라고 딸에게 알려”주었다, “잎이 다섯 가닥씩 뭉쳐 자라서 오엽송이라고 부른다고.”(141) 조금 들뜬 목소리로 나는 “오엽송 사이로 바람이 불면 솔숲에 부는 바닷바람과 같겠다고” 말했었다.(141) 어머니는 내게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늘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다. 나는 발코니의 오엽송 분재가 나를 이곳에서 구해줄 것임을 알아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람이 세게 불어 낡은 ‘창틀이 덜거덕댈’ 때, 더이상 그 소리는 나의 “불안을 키”우지 못했다.(129) 세차게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의 오엽송은 “연둣빛 솔잎을 찰랑이며 시원스러운 소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129)
어머니가 오엽송 분재를 데려온 지 몇 주가 지나고 “태풍이 북상”했을 때,(141) 나는 덜거덕대는 창문을 따라 조금씩 흔들리는 오엽송의 숨소리에 반가운 마음으로 귀 기울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식물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핍된 것과 과잉된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는 것. 그들의 말이 찰랑이며 들려오는 것. “처음에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지 못한 자신이 소통을 그리워하느라 겪는 환청이라 여겼으나, 그렇지 않았다.”(194) 솔잎 하나하나는 흔들리며 말하고 있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느 때와 똑같이 말 없는’ 나와 오엽송은 서로에게 몸을 기울임으로써 서로의 목소리를, 숨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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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프라하』 저자 최유안 소설가를 만나다.
소전문화재단 문학 출판사 소전서가에서 선보이는 〈도시 산책〉 시리즈 첫 책, 『카프카의 프라하』. 소설가가 걸어 본 소설가의 도시. 2024년 서거 100주기를 맞은 카프카를 기리는 마음으로, 그가 태어나고 자란 애증의 도시 프라하를 소설가 최유안이 걸었습니다. 카프카를 안내자로 삼아 걸었다는 구석구석의 산책길에서 두 소설가는 어떤 만남을 가졌을까요. 그 소회를 들어 보고자 합니다.
Q. 『카프카의 프라하』는 소전서가의 문학 기행 에세이 <도시 산책> 시리즈의 첫 시작을 알리는 책입니다. 책을 쓰면서 소설가로서 소설가의 도시를 산책하는 일, 어떠셨어요?
A. 뭔가 특별하기도 했고, 비장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저도 아무런 목적 없이 여행할 때가 있는데요. 이번엔 소설가라는 정체성으로, 카프카라는 아주 중요한 동행자와 함께, 프라하를 소개해야 한다는 목적을 안고 여행을 하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프라하와 카프카를 한몫에 더 잘 읽어야겠다는 욕심에 마음이 분주했어요. 카프카는 태어나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프라하를 떠나지 못했어요. 그러니 어린 시절부터 중장년이 된 카프카까지, 그의 발이 닿은 곳마다 내 발이 직접 닿을 수 있다는 점이 프라하 산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도 프라하에서 이 책을 쓰는 동안 유명 관광지라 하더라도 카프카와 연관된 장소가 아니라면 전혀 가지 않았고요. 그럼에도 충분히 마음이 꽉 찬 여행을 하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카프카 덕분이었겠죠.
Q. 이 책은 총 다섯 개의 산책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산책길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직업과 문학 사이의 고민이 보이는 'N잡러 카프카'의 산책길. 최유안 작가님도 다른 직업과 소설가를 겸하고 있으셔서 유난히 더 공감했으리라 추측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셨는지, 그리고 이 산책길에서 했던 생각들이 궁금합니다.
A. 얼마 전에 이 책에도 등장하는 노에미라는 체코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최근에 체코에서 나온 카프카 관련된 기사의 한 구절을 읽어주었어요. “그가 일하던 회사에서 승진했을 때,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는 기록이 있다. 몇 분 동안 지속되었고, 카프카는 사무실 밖으로 끌려나가야 했으며, 그것은 그에게 끔찍한 수치였다.” 체코의 어느 역사학자가 한 말인데요. 저는 이 웃음이 정말 기뻐서 웃는 건지, 어이가 없어서 웃는 건지 헛갈렸어요. 일기에 보면 「변신」을 쓴 후 카프카가 이런 말을 했거든요. “밑바닥까지 완벽히 불완전하다. 그 당시에 출장으로 방해만 받지 않았어도 훨씬 더 잘 쓸 수 있었을 거다.” 이렇게 글 쓸 시간도 부족한데 승진이라뇨. 저도 회사 다닐 때는 새벽 5시 전에 일어나서 출근 전까지,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시간을 쪼개어 글을 썼어요. 근데 또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문학을 하기 위해서거든요. 그런 모순을 완벽히 공감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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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두 번째 산책길은 사랑의 산책길 '애인들'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그것이 카프카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해지는 산책길입니다. 카프카에게 있어서 애인들, 사랑은 어떻게 작용했을까요?
A. 누군가를 사랑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과정은 소중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저는 똑똑한 카프카가 관계라는 가시울타리로 보호받는 것, 가둬지는 것, 상처받는 것, 버려지는 것을 모두 두려워했던 거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마누엘 칸트의 사례도 책에 썼는데요. 카프카 역시 상처를 주고 입히는 것을 무서워하다 보니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그러니 나중에 밀레나 같은, 만나지도 못한 채 편지로 애정을 나누는 상대도 등장하게 되죠.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잘 다져진 관계는 인간에게 안정감이라는 울타리가 되어 주고요. 하지만 그런 관계는 깊어질수록 상처도 깊어지는 법이죠. 문학과 직장만으로도 충분히 분주했던 카프카는 어떤 인연을 맺는 것에 굉장히 머뭇거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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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만.소 겨울방학 시즌 진행자 모집
내가 기획한 독서 모임을 소전서림 회원들과 나누는 <내가 만드는 소전독서회> 진행자가 되어 보세요. |
소전서림 서가 큐레이션
'비밀' 키워드에 대한 소전서림 멤버 다독님의 서가 큐레이션을 지금 바로 만나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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