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신년 운세, 보셨나요? 유명한 사주 집들은 예약조차 어려울 정도로, 이미 한 해의 스케줄이 꽉 차 있기도 하죠. 저도 한때는 연례행사처럼 신년이 되면 사주 풀이를 들으러 이곳저곳을 다니곤 했어요.
내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는 걸까?
질문은 역사와 함께 반복됩니다. 왕들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점치고자 신탁을 구했었죠. 『오이디푸스 왕』의 라이오스는 '자기 아들로 말미암아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식을 버렸었고, 그 선택은 오히려 운명을 불러왔습니다.
그렇게 버려진 라이오스의 아들,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지만, 그 끝에서 비극의 운명을 마주합니다. 운명을 피하려 선택한 모든 길이 결국 운명으로 향하는 길이었다는 사실, 어쩌면 허무하고 덧없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이었을까요?
그런데 각기 정해진 운명대로 사는 게 인간의 삶이라면, 운명을 미리 알려고 하는 대신에 매 순간 내 뜻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다 보면 그것이 내가 만든 삶인지, 정해진 운명이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죠.
제가 여러분께 올해의 일을 미리 하나 말씀드릴까요? 이 레터를 읽는 여러분은 올해, 좋은 문학을 알아보는 눈을 기르게 될 거예요. 이건 예언이 아니라, 직감이라고 할까요?
그럼, 그 감각을 깨울 이달의 문학 이야기, 함께 시작해 봐요.
from.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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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읽는사람」 구독자만을 위한 깜짝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어요. 추첨을 통해, 오직 읽는사람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읽는사람 x 순이지 작가 콜라보 가방>🎁을 선물로 드립니다. 레터 하단에 안내되는 이벤트를 놓치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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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서평 | '이달의 소설' & '이달의 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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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문학을 읽고 풍성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달의 고전'을 통해 고전문학을 깊이 있게 읽으며, 좋은 문학이란 무엇인지 알아보는 안목을 기릅니다. '이달의 소설'에서는 우리 시대의 뛰어난 소설들이 미래의 고전으로 남을 수 있도록, 현재 출간되는 장편소설과 작가들을 꾸준히 살펴봅니다. '이달의 소설' 선발대, '이달의 고전' 고독대, 그리고 '소전독서단'이 들려주는 진솔한 서평을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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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프로데 그뤼텐
희로애락을 유난스럽지 않게 담담히 회고하는 일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으로 살아온 자의 삶은 절대 무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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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단 | d0tory | 고전지수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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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향하는 그 과정에 함께한 삶의 흔적들이 이리도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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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대 | JOOOOO | 고전지수 4.2
❝
인생의 마지막 날에는 좋았던 일들만 기억에 남을까. 잔잔하고 평온하게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전개는 작가의 너무 편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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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대 | 이요마 | 고전지수 2.0
폴란드인 | J. M. 쿳시
사랑에 대하여 끝없는 의심을 품다 끝내 나란히 존재할 대상이 사라진 후에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마음이 텅 빈 놀이동산처럼 반짝여서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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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단 | Neo | 고전지수 3.8
마음에 있는 무언가를 말로, 음악으로, 글로 표현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당사자에게 닿았는지 끝까지 알 수 없는 아이러니함까지 완벽하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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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대 | 슈슈다 | 고전지수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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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평온을 추구하지만, 충동적으로 되고 싶은 욕망을 어설프게 가진 중년의 여자. 열정을 담기에는 늙은 몸과 비루한 표현력을 가진 노년의 남자. 둘 사이의 미지근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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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단 | 사모예드 | 고전지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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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1959) | 귄터 그라스
양철북 소리가 들린다. 바닐라 가루처럼 달콤하고 쌉싸름한 인간 존재를 세 살배기의 눈으로 포착한 마술적 사실주의. 인간의 욕망은 또 어떤 소리를 낼까. 또 우리는 어떻게 저항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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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대 | 유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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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된 세계와 전쟁, 혼란에 대한 온몸으로의 거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번 양철북을 울려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게 만든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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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단 | 짜라투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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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문학은 야만인가. 글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는 힘차고 기나긴 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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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단 | 파란
제5도살장 (1969) | 커트 보니것
모든 죽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반복되는 '뭐 그런 거지.' 여기에서 살인과 전쟁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는 듯 미쳐 있었던 당대의 끔찍한 분위기를 직접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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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단 | 일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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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이러니와 참혹함을 이토록 냉소적인 블랙 유머로, 하지만 누구보다 정성껏 서술하는 소설을 본 적이 없다.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허무한 비극이지만 어쩐지 눈물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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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대 | 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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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필그램의 시간 여행과 그의 입을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시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으면 그저 재미만 있는 SF 소설에 불과한, 뭐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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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단 | 알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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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넘어서는 미래의 고전이 될 장편소설을 찾아 나서는 활동, 〈이달의 소설〉은 매월 소전서림 큐레이션 국내외 신간 장편소설 중 한 권을 읽고 서평과 고전 지수를 평가합니다. 3월, 〈이달의 소설〉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이야기를 담은 두 작품입니다.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탐색하는 여정을 함께 만나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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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에이션 루트』 (2025)
마쓰나가 K 산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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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은 문학적 행위, 이건 소설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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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에이션 루트’,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참여한 산악회에서 찾은 삶의 샛길
이직한 지 3년, 사내 인간관계를 위해 주인공 하타는 산악회에 참여한다. 거기서 정해진 길이 아닌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산을 오르는 일명 ‘베리에이션 루트’를 하는 메가를 마주한다. 한편, 회사는 경영난에 빠지고, 직원들은 자꾸만 경영진에 불려 간다. 이런 와중에도 계속 산에 오르는 메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걸까, 알지만 상관하지 않는 걸까. 하타는 그런 메가가 한다는 ‘베리에이션 루트’가 못내 궁금하다. 마침내 그는 메가에게 은근슬쩍 접근을 시도한다. “베리, 하신다면서요?”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베리에이션 루트』가 출간된다. 작가 마쓰나가 K 산조는 2021년 군조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뒤, 두 번째 발표작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단 두 작품으로 일본 신인 작가에게 주어지는 주요 문학상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른바 ‘오모로이 순문(재밌는 순문학)’을 표방하는 작가로, 문학성이라는 핵을 간직한 채 심플하고 재밌는 작품을 추구한다. 『베리에이션 루트』는 이런 작가의 방향성과 등산 애호가이자 직장인인 자신의 경험이 절묘하게 만나는 작품이다. ‘베리에이션 루트’는 정해진 길이 아닌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등산법을 뜻하는 용어로, 작가는 경영난에 봉착한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는 주인공이 의문의 동료와 함께 산에 오르며 그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생생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렸다. 끝없는 불안과 무쓸모의 예측을 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한나절 산행과 같은 고요와 선선함을 안겨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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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올랐으며, 어디로 향하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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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드라마이자 회고록, 사회 에세이이자 문화 분석을 넘나들며 치열하게 펼쳐 보이는 이 시대의 자화상
'『위대한 개츠비』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고, 유수의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주목을 받은 아야드 악타르의 장편소설 『홈랜드 엘레지』.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미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아야드 악타르는 미국의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자본주의의 폭력을 날카롭게 포착한 희곡과 소설로 대중과 평단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 왔다. 특히 911 테러 이후 강화된 이슬람 혐오로 인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린 희곡 「수치Disgraced」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큰 화제를 몰고 왔다.
『홈랜드 엘레지』는 악타르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회고록과 소설, 역사와 문화 분석이 경이롭게 조화를 이룬 역작'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아메리칸 북 어워드를 수상하고, 앤드루 카네기 메달상 후보에 올랐다.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은 도널드 트럼프 심장 주치의인 아버지를 둔 2세대 이슬람계 이민자 극작가 아야드 악타르를 주인공으로, 트럼프와의 화려한 식사 자리와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 뒤편부터 할리우드힐스와 스크랜턴의 낙후된 공장 지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미국'과 '미국적 삶'의 이면을 과감하게 파헤친다. 미국에서 살아가며 정체성의 딜레마를 겪는 무슬림으로서 조국에 대한 분노와 애증을 담아 써 내려간 이 강렬한 자전 소설은 예술, 금융, 인종, 종교, 학계, 국가 등 다양한 주제를 관통하며 트럼프 시대의 실패한 '아메리칸드림'을 세련된 블랙 코미디로 탁월하게 그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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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이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는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겠죠. 고전을 통해 삶을 더 풍요롭게 가꿔 나가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매년 〈이달의 고전〉 24권을 소개하고 함께 읽어 나갑니다. 2025년 〈이달의 고전〉 테마는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문학을 통한 세계여행'입니다. 3월, 우리에게는 '콤플렉스와 증후군'으로 잘 알려진 두 권의 고전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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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키워드: 콤플렉스와 증후군 비교 키워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VS 리플리 증후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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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오이디푸스에서 나왔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가 가진 모순에 집중하여 ‘비극의 전범’을 만들어냈다. ‘리플리아드(The Ripliad)’라고 불리는 리플리 시리즈는 독창적인 살인마 캐릭터 톰 리플리를 창조하여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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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하면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나 소포클레스의 비극보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왕」을 차용하여 도입한 개념으로, 프로이트는 아버지를 제거하고 어머니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모든 사내아이의 무의식적 욕망이라고 설명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이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왕을 자신의 정신분석 현상으로 읽어낸 것처럼 이 작품으로 들어가는 여러 문이 열려있음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포클레스는 당시 아테네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오이디푸스 신화를 각색하여 비극 작품을 만들어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비극의 본질’을 정립하면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최고의 비극 작품으로 평가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하는 비극의 목적은 공감을 통해 연민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잠시 극장에 앉아 높은 굽의 무대용 신발을 신고 가면을 쓴 배우들과 합창단을 바라보는 아테네 시민이 되어보자.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다. 관객석의 나는 어리석은 오이디푸스를 동정한다. ‘멈춰! 살인자를 찾지 마! 차라리 그가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오이디푸스 신화가 시공간을 넘어 끊임없이 재생산된 덕에 관객을 끌어들이는 정보의 격차, 극적 아이러니를 현대의 독자인 우리도 아테네의 시민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은가.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시간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오이디푸스가 테베의 왕이 된 이후의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이디푸스는 탄원자들의 요청을 받아 선왕 라이오스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내려 하는데, 오이디푸스가 수사관이 되어 주변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일종의 범죄수사극, 미스터리 스릴러의 플롯처럼 읽히기도 한다.
오이디푸스 왕은 진실을 추구하는 자의 이야기이다. 오이디푸스가 제일 먼저 밝혀야 할 진실은 테베에 역병이 돌게 만든 살인 사건의 내막이다. 그는 스핑크스가 낸 문제를 맞혀 인간 중에 ‘으뜸가는 분’이 된다. 그러나 스핑크스가 낸 문제, 아침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람이라는 답을 냈던 오이디푸스도,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극이 진행되면서 오이디푸스는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자신임을 알게 되고,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진실을 알게 된다. 이 작품 전체가 다루는 것은 어쩌면, 오이디푸스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그로 표상되는 인간 존재 자체에 관한 진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새로 시작하여 다시 어두운 일을 밝히겠다.
+ Film
「Oedipus Rex」, 타이론 거스리, 1957
87분, 컬러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을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각색하여, 캐나다 스트랫포드 페스티벌의 공연을 촬영했다. 배우들은 타냐 모이세비치(Tanya Moiseiwitch)가 디자인한 가면을 쓰고 연기를 펼치는데, 뛰어난 가면 디자인과 복원된 그리스 비극 연기 양식으로 기념비적인 공연이 되었다.
「외디푸스 왕」,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1967
104분, 컬러
파졸리니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리소,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각색하여 자신의 영화로 제작했다. 그 중 「오이디푸스 왕」을 각색한 이 작품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 치하의 이탈리아와,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고대 신화세계를 병치시켜 파시스트적인 아버지 세대에 대한 ‘정신분석’을 시도한다.
「장미의 행렬」, 마츠모토 토시오, 1969
105분, 흑백
마츠모토 토시오의 극영화 데뷔작으로, 오이디푸스 신화의 골격을 충실히 따르는 동시에 ‘게이보이’들의 일상과 60년대 일본 격동기의 모습을 담아낸다. 스탠리 큐브릭이 <시계태엽 오렌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밝힌 작품이다.
「올드 보이」, 박찬욱, 2003
120분, 컬러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의 이름은 오이디푸스를 떠올리게 한다. 근친상간 모티프와 인간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고뇌, 자신의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처럼 혀를 자른 오대수의 모습에서 오이디푸스 왕과의 유사성을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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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리플리』 (1955)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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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 범죄소설을 고전으로 만들까? 작가 본인은 『재능 있는 리플리』의 인기 요인을 ‘광적인 문장’과 ‘리플리의 오만방자하고 대담한 성격’ 덕분이라고 이야기했다. '리플리아드(The Ripliad)'로 불리는 리플리 시리즈를 견인하는 힘은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사이코패스’라는 수식어가 붙은 주인공 톰 리플리의 캐릭터에서 나온다.
톰 리플리는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자신을 키워준 도티 이모에게서 벗어나 뉴욕으로 떠난다. 배우의 꿈이 좌절되고 뉴욕 생활의 불만이 쌓여갈 때쯤 우연히 허버트 그린리프에게 자신의 아들 디키가 미국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해 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고 이탈리아로 향한다. 결국 디키를 설득하는 것에 실패하고 허버트에게 해고를 당한 톰은 디키를 살해하고 그의 신분을 훔친다.
애증과 조바심과 절망이 뒤섞여 미칠 것 같은 감정이 가슴속에서 부글거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디키를 죽이고 싶었다. (중략) 이번 여행에서 디키를 죽인 다음, 사고였다고 둘러대면 된다. 기발한 생각이 방금 떠올랐다. 내가 디키 그린리프가 되자. 그러면 디키가 하던 걸 내가 다 할 수 있어.
소설과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마음속으로 꿈꾸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뜻하는 용어다. 톰은 자신이 디키라고 믿지는 않지만, 디키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
그는 톰이면서도 톰이 아니었다. 떳떳하고 자유로웠지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식적으로 조종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몇 시간 내내 의식하며 행동하다 보니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무렇지 않았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굳이 긴장을 풀 필요조차 없어졌다. 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 이를 닦으러 가는 순간부터 톰은 디키가 되었다.
리플리 증후군은 실제로 있는 질환은 아니지만,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 소재로 사용되었다. 거짓말을 반복하는 인물의 기저에는 강렬한 욕구와 그 욕구를 가로막는 현실의 장벽이 있다. 하이스미스의 전기 작가인 조안 쉔카는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독자를 도덕적 상대성, 전이 가능한 죄책감, 불안정한 정체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아들인다.” 이런 범죄 소설의 독자는 대체로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을 갖게 된다. 범죄 행위의 위법함을 알고 범죄자가 처벌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 범죄자에 깊이 공감하여 나도 모르게 그가 붙잡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 톰은 독자의 바람대로 수사망을 유유히 빠져나가 그리스로 향한다.
호텔로 갑시다. 최고급 호텔로 갑시다. 최고로 좋은 호텔로요!
+ Film
「태양은 가득히」, 르네 클레망, 1960
115분, 컬러
당시 거의 무명이었던 알랭 들롱이 톰 리플리 역할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이 영화에 대해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지성적으로 흥미롭다’, ‘알랭 들롱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고 만족감을 표했으나 소설과는 달라진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는 ‘대중 도덕에 대한 끔찍한 양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리플리」, 안소니 밍겔라, 1999
139분, 컬러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연출, 각색한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톰의 범죄가 들통나는 것으로 각색되는 반면, 「리플리」에서는 톰이 디키에게 느끼는 동성애적인 감정을 살리고, 완전 범죄를 위해 계속 살인을 지속하는 등 원작에 가깝게 각색되었다.
+Drama
「리플리: 더 시리즈」, 스티븐 자일리언, 2024
넷플릭스에서 2024년 4월 공개된 미국의 심리 스릴러 드라마. 1950~60년대 누아르 영화처럼 흑백 화면으로 연출하여 ‘히치콕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영화들에 비해 톰 리플리의 범죄자적 면모를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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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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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재능 있는 리플리』를 원작으로 한 영화 <리플리>(1999)는 타인의 삶을 훔치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재능 있는 리플리』가 끊임없이 영상화되고 언급되는 이유는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 훔치고 싶을만큼 부러운 누군가의 삶을 마주한 경험이 있어서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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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리플리>는 원작의 서사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감독만의 해석을 살짝 얹어 둡니다. 원작과 영화화한 첫 번째 작품이었던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 톰 리플리는 열등감과 질투에 사로잡혀 사기와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로 묘사되는데요. 밍겔라 감독은 리플리의 범죄가 단순한 시기심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디키를 단순히 시기,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동경하고 연모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거든요. 디키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 따뜻한 태양 아래 펼쳐진 이탈리아의 풍경,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이 리플리에게는 강렬한 매혹으로 다가왔던 것이죠.
그는 이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우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을 거듭합니다. 결국 리플리는 자신을 디키와 동일시하며 점점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잃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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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사소한 거짓말로 시작했지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다 결국 자신마저 그것을 진실로 믿어버리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제 정신의학적 진단명은 아니지만, 영화 <리플리>의 주인공처럼 자신을 속이며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죠. 최근에는 배우 수지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안나>에서도 이와 유사한 모습이 등장하며 다시금 '리플리 증후군'이 주목받았습니다. 타인의 삶을 동경하고 자신을 감추는 이야기, 시간이 지나도 이런 이야기가 여전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끄는 걸 보면 참 흥미롭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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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플리>의 또 다른 매력은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풍경입니다. 나폴리, 베네치아, 로마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화면 속에서 주드 로와 기네스 팰트로는 눈부신 지중해의 여유로움과 낭만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톰 리플리의 불안과 긴장감이 이 아름다움 속에 교차하며, 관객은 끝까지 그의 행보를 따라가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동경했던 톰 리플리.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나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그것이 진짜 나 자신일지, 혹은 누군가의 삶을 동경하는 모습일까. 뭐,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각자가 찾아가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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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여러분의 문학 이야기가 궁금해요! 여러분만의 특별한 독서 경험을 자유롭게 들려주세요.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들 중 추첨을 통해 20분께 <읽는사람 x 순이지 작가 콜라보 가방>을 선물로 드립니다.
▪️ 기한: 2025년 3월 15일까지
▪️ 추첨을 통해 당첨된 분들께는 3월 21일 개별 안내 예정 (총 20명)
▪️ 답변 내용은 4월 뉴스레터에서 콘텐츠로 활용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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𝑸. 몇 년이 지나 다시 읽고 또 읽어도 좋은 책, 또는 그럴 것 같은 책이 있나요? 그 책이 특별한 이유도 함께 나눠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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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사람님, 오늘 레터는 어떠셨나요? 더 많은 문학 이야기를 읽는사람에서 만나보고, 우리는 4월 레터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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